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레논 (문단 편집) ==== [[오노 요코]]와의 만남 ==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john-lennon-yoko-ono-double-fantasy-kishin-shinoyama-ss02.jpg|width=100%]]}}}|| [[비틀즈]]로 데뷔하기 직전인 1962년, 존은 리버풀 미술 대학 시절부터 사귀던 [[신시아 레논|신시아 파웰]]과의 사이에서 아들인 줄리안 레논이 태어나자 그녀와 결혼했다. 그러나 그는 기획사로부터 신시아와의 결혼 사실을 숨기라는 요구를 받은데다가[* 실제로 신시아의 존재는 미국 진출 이후에야 밝혀졌다.], 비틀즈가 대성공을 거두자 인기에 취해서 신시아와 줄리안을 냉대하기 시작했다. 1966년, 비틀즈가 투어를 중단하고, 휴식기를 갖게 되자 존은 [[미국]]에서 일본인 전위 예술가 [[오노 요코]]의 전시회를 관람한 것을 계기로 요코에게 푹 빠지기 시작했고, 급기야는 [[The Beatles|'화이트' 앨범]]을 작업하던 도중인 1968년 신시아와 이혼하고, 요코와 재혼한다. 요코는 존을 아예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. 대학에서 신시아가 다른 남자와 얘기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신시아의 뺨을 때릴 정도로 [[꼴마초]]였던 존은 요코를 만난 뒤 [[페미니스트]]가 되었고, 사회 이슈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으며, 전위 예술을 자신의 음악에 접목시켰다. 존은 요코와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. >우리의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, 아무것도. >난 늘 예술가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을 꿈꾸어 왔다. 나와 예술적 상승을 공유할 수 있는 여자 말이다. 요코는 바로 그런 여자였다. 일부 팬들은 훗날 요코가 비틀즈 해체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여겨 '마녀', '일본 잡귀'라며 맹렬히 비난하게 되였는데, 그녀가 미디어를 통해 비틀즈 해체의 공신 중 한명으로 비추어지며 달갑게 보기 힘들었던 것. 비틀즈 해체의 직접적인 요인은 멤버들 간의 음악적, 사업적인 이견[* 사망한 [[브라이언 엡스타인]]을 대신할 비틀즈의 후임 매니저 선정에 대한 멤버들의 이견 불일치를 말한 것으로 현재 시점에서 비틀즈 해체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.]과 개인적인 불화였다지만, 바로 그 불화를 가속화 및 재점화하는데 요코가 관련되어 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. 또한, 다수의 비틀즈 팬들 입장에 그녀는 어느 날 갑툭튀해 존의 옆자리를 차지한 외부인이었고, 존의 음악까지 간섭했기에 굴러들어온 돌이 깽판친다는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. 이런 연유로 비틀즈 해체에 미친 영향 이상으로 과도하게 까이는 경향도 확실히 있다.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attachment/uploadfile/171157418.jpg|width=100%]]}}} || || '''1969년 3월, 'Bed-In for Peace' 시위 도중 인터뷰를 하는 존 레논과 오노 요코''' || 둘이 본격적으로 만남을 갖기 시작한 1968년을 기점으로, 존은 전위 예술가인 오노 요코의 영향을 받아 갖가지 전위적 행위를 시작한다. 신혼여행 대신 언론을 호텔방에 초대한 후, 침대 위에서 파자마를 입고 앉아 반전시위를 한다던가(Bed-In for Peace 시위), 요코와 함께 발매한 실험 음반 자켓에 [[알몸]]으로 사진을 찍어 커버로 삼는다든가. '''앞 뒷면 전부.'''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